아우라(aura)는 후광이나 광채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인데 종교에서 장엄함의 표현으로
쓰인다. 때로는 성인들의 초상화에서 아우라가 표현되어 있기도 하고, 때로는 카리스마를 갖고 싶은 정치인이나 종교인들이 아우라를 구하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하기도 한다. 비합리적인 상상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아우라를 구하기 위한 노력은 지위와 계층을 가리지 않고 넘쳐나는 경향이
있는데, 이념이나 종교에 잘 훈련된 백성들에게는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것 같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자인 벤야민 (Walter Benjamin 1892
- 1940 )은 아우라는 한 번뿐인 현상이며 '원본'에만 존재하지 복제품을 거치면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 편으로
벤야민은 역사적인 것에 불과한 이념을 1회에 한정된 사실로서 제시한 사진과 영화, 특히 파시즘영화같은 것의 위험성을 제시했다. 말하자면 대중을
혼망한 카리스마로 일시적으로 자극하여 선동하는 문제를 매우 싫어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벤야민은 훗날 나찌에 쫒기는 신세가 된다.
정치지도자가 이념적이거나 종교적인 색체가 강하면 덜컥 이 아우라에 의존하여 국민의 지지를
얻을려는 욕구가 강하게 된다. 본질적인 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의 '내공'이 필요하다. 노력과 고난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과거
성인들의 머리에 둘러진 아우라는 고난과 노력의 상징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젠가 한 개신교인과 대화를 하던 중 '한국인은 신심(信心 / belief for
God)이 강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실제로 그렇다. 한국인들은 이념이던 종교던 믿고 본다. 그리고 오랫동안 아우라를 간직하고 싶어한다.
벤야민의 말처럼 아우라는 그 시대에 획기적인 구원을 위해 나타났던 일시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위정자나 종교인들의 '수단'으로서 오랫동안
남용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일반인들의 직업세계에서도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하여 아우라를 구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윗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감추어서
카리스마를 얻어내고, 그것을 이용하여 하급자를 '사용'하기도 한다.
대통령이 집권초기에 아우라가 있었으면 그 아우라는 집권 말기에도 빛을 발휘해야 진짜
아우라다. 어설픈 인과의 안좋은 끝을 예측하지 못한 어설픈 능력이 아쉽다. 특히 철저하게 아우라에 의존한 정치를 하는 북한은 더욱 그렇다. 그
덕에 북한 정부는 지금부터 연착륙을 시도하지 않으면 큰 변혁으로 안좋은 끝을 볼 가능성이 많다. 허상에 의해서 지배되던 국가에서 허상의 실체가
드러나면 그 충격과 파장은 클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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