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한반도를 풍비박산으로 만든 비합리적인 이념과 종교같은 관념의 세계를 비판하게 됬는지 생각해보니 그 세계를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고 힘든 날 초합리성의 세계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것 같다. 비합리성이 아니고 초합리성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이성과 의지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잊지않았기 때문에 설령 내 의식이 종교적인 색체를 띈다고 해도 노력이라는 것을 중시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던 것 같다. 중학시절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지드의 '좁은문'을 읽다가 힘든 길을 의미하는 '좁은문'의 의미를 빨리 깨달았던것 같다.
현상은 관찰자와 관련되어 나타난다는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마하(Emst Mach 1836 - 1916)의 말처럼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그런 세상을 이해못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되어 그런 세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때로는 노동자로서, 때로는 학자처럼, 때로는 정치인처럼, 때로는 스포츠인으로서 변신을 시키면서 국가와 사회의 근본문제인 이념의 문제를 이해할려고 노력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는게 참 많아진것 같다. 겸손과 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르던때에 비교해서 그렇다는 의미다.
전 정부의 대통령을 보면서 소싯적의 고난을 이기고 성장하여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공감보다는 수직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열등의식의 반동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중요한 목적을 잊어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현 정부의 대통령을 보면서 굴러보지 않은 국민대다수 서민의 세계를 절대 공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내 생각이 옳았던것 같다. 짧은 인생이지만 내가 간간히 경험한 세계이기 때문에 국가의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정치지도자의 입장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기도 하다. 이해하거나 옳다는 호의적인 입장이 아니고 스스로에게 냉철하지 못한 대통령들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 하층 서민이자 노동자인 내 삶이 너무 힘든 탓이기도 하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의 마음이 나와 같을 것이다.
마하는 이론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절대공간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사유의 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것이므로 배제시켜야 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기독교철학으로 생각해보면 13세기 영국의 스콜라철학자 오컴은 복잡하거나 불필요하고 지지부리한 명제보다는 단순하고 간결한 명제가 진리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인간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인간은 원죄가 있으며 노력과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부철학과는 달리 스콜라철학은 의지와 이성을 중시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는데, 신앙과 실증이 결합할 수 있는 여지를 스콜라철학에서 찾을 수 있을듯 하다. 어쨌든 오컴의 생각(오컴의 면도날)은 마하에게 받아들여져서 보이지 않는 것에 현혹되지 말라는 '현상주의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앞으로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이상한 세계에 의식의 발을 들여놔서 한반도를 풍비박산으로 만든 정치지도자들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듯하다. 10여년전부터 주은래와 등소평의 노력을 통해서 매우 비현실적인 국가를 실증적인 과학강국으로 만들어가는 중국에 대해서 경이로운 생각이 들고 부러웠는데, 결과적으로 과학과 연계된 국방기술,산업과 경제, 모든 면에서 중국은 놀라운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며 초라한 한반도의 자화상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나마 산업과 과학기술분야에서 애쓰는 다수의 한국인들때문에 근근히 유지되고 있지만 '이념''종교''부패''비리,'권력'비선''공작'같은 이상한 말들이 주인이 된 정치판은 국가발전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는 원흉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