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특별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 만났을때 동료들을 카리스마로 휘어잡고,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변덕과 돌발적인 공격성으로 주변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평화로운 심성의 동료들은 싸우기 싫어서 회피하거나 복종하거나 하는, 뚜렷이 양면적인 대응을 하고 있었다. 천천히 과거사를 유도해서 들어보고는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정신적인 문제임을 인지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돌발적인 격정을 가라앉혀주며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아쉬운 것 없이
성장하고, 연극 영화같은 예술적 기질이 있어서 그 길로 갈뻔했다는 과거사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상상력과 현실, 의지력이 조화가 되지 못한
상태가 교정되지 못하는것 같았다.
사담(사담후세인 전 이라크 통치자)의 다중적 성격 가운데 폭력에 대한
집착은 가장 무서운 부분이었다. 그는 고문당하다가 처형되는 사람들의 비디오를 몇 시간씩 감상할 정도로 고통이 발생하는 과정에 집착을 가지고
즐겼다. 고문의 방법은 다양하고도 잔인했다. 산 채로 파묻기도 하고 긴 못을 희생자의 귀에서 머리로 박아 넣는 방식도 사용되었다. 교수형으로
빨리 죽이고 싶지 않은 희생자는 산 채로 사막에 파묻혔다.
고문에 대한 사담의 집착은 10대 초반의 아들들에게도 이어졌다. 그의 두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는 고문과 처형을 보기 위해 매주 바그다드 감옥을 방문했다. 이런 잔인한 성향의 사담은 친구나 친척 그리고 두 명의 사위마저
처형토록 지시를 내린 후 공개적으로 울었다. 1979년 권력 장악 후 바트 당원을 숙청할 때는 연단에 서서 공개적으로 울었다. 한 사람씩 처형될
때마다 회의실은 그의 흐느낌으로 가득 찼고 연단의 마이크 때문에 더 크게 들렸다. 기이하고도 무시무시한 연출이었다.
- 고든 토마스 [GIDEON'S SPIES] -
기이한 상상력과 그것들을 바쳐주는 권력의 앙상블로 발생한 장면이다. 이런 비숫한 상황들은
2차대전때 유태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전략적인 실수를 많이 했던 히틀러가 화가의 전력이 있다는 점, 나름 한 국가의 개척자로서 역할을
했던 김일성에 비해서 현실 대응능력이 떨어져 고난의 행군시절을 겪은 북한의 이전 지도자 김정일이 영화광이였다는 사실등은 잘못된 상상력이 확신과
권력을 만나게 되면 아주 크고 아주 나쁜 파장이 인다는 예를 보여주고 있는듯 하다. 한국의 이전 정부때도 냉철하지 못한 종교적 상상력과 사고가
정세를 지배했던것 같다. 이념이나 종교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닐뿐더러 그런것과는 별개의 문제인듯 하다.
이념이나 종교와 같은 관념이 가져다 주는 부작용(긍정적인 작용이 아니라 부작용이다.)을
무척 싫어하게 된 이유중 하나는 그런 관념들이 가져다 주는 비젼(VISION)의 문제점을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인듯 하다.
심리학자 올포트는 성숙된 퍼스낼리티(personality)란 다음과 같은 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1.자신의 충동이나 쾌락을 뛰어넘어 자기 외부의 가족, 친구, 일,
정치활동 등 추상적 가치로 자기를 확대시킨다
2.타인과 공감하여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타인의 약점이나 단점에
너그럽다.
3.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어떤 욕구불만의
상태도 견딘다.
4.적절하고 현실적인 과제를 갖고 인생을 의미있게
산다.
5.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6.장기목표를 갖고 미래지향적이다.
의지력이 없는 기대는 스스로를 사기치는듯 하다. 이념이나 종교가 보여주는 비젼이란 자기
성찰과 노력이란 바탕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는 그것들이 가져다 주는 과실에 대한 기대만 있는듯 하다. 물론 기본적으로 학교교육이나
사회교육이 여러가지로 미비한 면이 있는 탓이기도 한 것 같다. 사담 후세인이 10대초반의 아들들을 고문의 현장으로 인도한 것과 같은 가정교육의
부재이기도 한듯 하다.
국가경영의 목표인 잘먹고 잘사는 문제는 잘먹거나 잘사는 문제 즉 양자 중 하나를 택일하는
문제가 아닌듯 하다. OR의 관계가 아니라 둘 다 병행해서 추구해야 하는 AND의 관계로 인식해야 할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경제성장과 같은 물질적 가치나 민주주의 같은 정신적 가치들을 택일적 관계로만 생각하는 이상한 발상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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