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추운 크리스마스 이브에 강변의 화려한 이국적 문화시설에 수많은 아베크족이 몰려 있는것을 보았다. 네온사인이 화려한 또 다른 세계를 구성하고 있었는데, 왠지 나와 관련이 없는 세상임에도 한파속에 그곳을 뚫고 지나가는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것 같다.
그 당시 겪었던 어둡고 냉혹한 외부세계와는 다르게 연인들의 사랑의 속삭임이 있었고,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고용인들이 있었고, 그곳까지 사람들을 모이게 한 고급승용차들이 있었고, 그리고 잠깐이나마 안락한 광경의 위안을 받은 내마음이 있었다.
경제행위에 있어서 감정이라는 것은 참 중요한듯 하다. 때로는 감정이 비극을 느끼게 하는 동기가 되기 때문에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매도당하기도 하는듯 하다. 내 자신 조차도 어렵고 힘든 시간에 내 자신을 무감동에 길들여 놓는게 강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던것 같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이 결심은 본능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시간과 공간이 허락하는 곳에서 음악을 들을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아베크족의 연심(戀心)이 동기가 된 공간은 꽤 폭이 넓은 경제적 인연이 맺어져 있는듯 한데, 감정이 만들어 놓은 경제적 효과의 예를 보는듯 하였다. 사실 좋은 차를 비싸게 팔 수 있는 근원, 맛있는 음식을 비싸게 팔 수 있는 근원, 새로운 스마트폰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마음의 근원, 제주도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근원, 나 혼자 잘살겠다고 나라를 뒤집은 마음의 근원에는 인간적인 감정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동기가 바탕이 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듯 하다.
요즘 땅콩회항사건과도 관련해서 운항정지 처분까지 받은 항공사의 손실은 항공사의 입장으로서는 '감정의 불경제'라는 효과를 경험하고 있는듯 하다. 피폐한 북한의 사정이나 천민자본주의 실태를 보여주는 한국사회도 인간적 감정을 소홀히 하면서 '감정의 불경제'효과를 보여주고 있는것 같다.
감정적이라는 것은 인간적이라는 의미와도 상통하는듯 하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감정이 많이 손상을 입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믿음과 신념이 지나치게 감정을 대체하는 사회속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 믿음과 신념은 더 나은 세계를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약자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자유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천국을 가게 한다는 목적으로 감정을 대체할려고 노력한다.
이념이나 종교, 물질에 대한 집착은 그보다 훨씬 근원적인 인간의 감정, 달리 표현하면 더욱 인간적인 것을 잃어버리게 하는것 같다. 물리학자 에딩턴은 "물질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우리는 물질이란 상념의 응결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다."고 말한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며 우리들이 '돈'이라고 하는 지극히 물질적인 존재와 그것들이 흐르는 경제의 배후에는 '인간의 감정'이라는 바탕이 있는듯 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