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역사발전의 단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단계 : 노동자와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의 갈등으로 기존사회가 해체된다. 2단계 :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 3단계 : 사회주의 국가가 완성된다.
가끔 대학도서관에서 학위논문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단어들을 많이 본다. ~에 관한 고찰, ~에 관한 제고등 형식과 논리로 잘 짜여진 제목과 세부목차를 보고 있으면 17,18세기를 전후해서 과학혁명이 일어나던 시절에 만연했던 기계적 사고의 잔영을 보는듯 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검증되지 못하는 직관적인 사고에 모든 것을 의존해서도 안되지만 시작과 투쟁과 완성이라는 기계적으로 짜여진 틀 속에서 경제와 역사적인 관점을 형성해 나가는 마르크스의 이론은 과학의 명분을 빌려 교조주의적인 믿음을 얻기에 충분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물며 종교적인 두리뭉실한 직관의 시대에 환멸을 느끼는 그 시절의 분위기는 마르크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개인의 생각이 단조롭지 않은 것처럼, 그런 인간이 모인 사회도 그렇게 단조롭지 않은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만연한 고민거리를 해결해줄 방도를 찾기 위한 '복음'과 같은 것을 찾는듯 하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만연하던 시절에 마르크시즘과 같은 투쟁적인 이념이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세상을 완성시키는 이념이란 있을 수 없는듯 하다. 오직 균형을 위한 노력만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과 사회의 모습은 정지된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움직여 나가는 생물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듯 하다. 확고한 이념이란 대칭적인 이념을 낳게 마련인듯 하다. 말하자면 노이즈마케팅으로 서로 비판하면서 성장을 해나가다가 각자의 관점속에 갇힌채로 파국을 맞는듯 하다. 그나마 먼저 꼬리를 내리는 쪽이 승리하는것 같다.
수정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균형점을 찾아 꼬리를 내린 자본주의는 살아있고, 기계적 투쟁을 강조하던 마르크시즘은 파멸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듯 하다.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념이란 '약을 파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의 철학자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 ~ 1962 )는 역사의 비연속성을 이야기 하지만 노이즈마케팅으로 인하여 서로 상반된 영역이 확장되어나간 자본주의와 과학적사회주의가 극단적으로 확장된 사건은 역사적인 흐름을 포괄적으로 생각해보면 강물처럼 도도하게 끊이지 않고 흘러갔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르크스만을 비판할 것도 아니다. 노이즈마케팅에 걸려들어서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으로 깊이 빠져버리거나 반공이라는 이념으로 깊이 빠져서 다른 관점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사회도 문제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과거 보다는 미래의 가치를 고려하는 것이 좀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균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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