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eong-chun.blogspot.com/2018/10/by-bus-1.html
어느 날 버스사고가 났다. 다른 자동차가 미끄러지면서 내가 운전하는 버스를 들이받고 내가 운전하는 버스는 지하철 공사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공사장의 철골 구조물이 내 얼굴 앞으로 밀려들어왔고, 밀려들어온 대쉬 보드에 다리가 끼어 큰 일이 벌어진 듯 했다. 기절하거나 비명을 지르는 대신 “정말 미치겠군”. 하는 푸념부터 나왔다. 대담한 자의 영웅심이 아니었다. 그동안 여러 제조업체나 비정규직 근로현장에서 일하면서 가혹한 환경에 시달려 온 정신의 결정판이었다.
인간은 고통을 겪으면 잔혹해진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경제적인 여유나 정신적인 여유는 고통을 완화시켜주기도 한다. 그 당시 다른 도시에 비해서 가로형태나 산업구조가 좀 산만한 도시를 운행했는데, 승객들의 불합리한 행패도 많았다. 반대로 의리나 인정도 많아서 버스기사가 불합리한 일을 겪으면 대신 나서서 버스기사를 보호해주는 순박한 사람들도 많았다. 사람들의 정서는 한국의 70년대 같았다.
요즘 북한이 NLL을 넘어간 한국민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뉴스가 자극적으로 나온다. 한국인들에게는 자극적이지만 북한으로서는 일상적일 수 있다. 지금 북한의 경제수준은 70년대 한국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70년대 한국의 군사정부시절의 인권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나는 좀 더 숙명론 쪽으로 생각을 한다. 요즘도 그 때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정서나 여유없는 사람들의 팍팍한 정서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해는 하지만 개선 할려는 노력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상황과 시민의식이 상호 발전하면서 잔혹한 사건들에 대해서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둔감하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요즘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한국의 정치인들은 단기적인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 자극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했다. 그 때 그 사람들의 생활상은 그랬다. 그런 정치인이 미래에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누군가는 항상 노력을 해 왔고, 그래도 나아지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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