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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9일 금요일

북한의 화폐개혁과 한반도의 보수적 재난


어느 날 조금이라도 나이 먹었다고 느낄때가 있다. 그때는 하잘것 없어 보이는 일을 하는 젊은이도 열린 사고를 가지고 나를 비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가지고자 해도 가질 수 없는 많은 것들에 대한 열망을 들켰을때의 기분이란 그나마 더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젊은이와 경쟁선에서 섰다는 패배감으로 표현해도 될것 같다.

나이 든 사람은 가장 기본적인 자본인 '나이'라는 것에서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거스르고 욕망을 충족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경쟁관계에 들어서게 되면 나이 든 사람의 연륜은 그가 얻어낸 사회적 지위와 확립시켜온 관점(나중에는 고집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만큼 사회에 어두운 영향을 주는것 같다.

노인과 함께 하는 시간에 힘든 일이 있다면 진취성을 잃어버린 탓에 과거의 습성속으로 관점이 매몰되어버린 마음을 볼때였던것 같다. 많은 노인분들은 어떤 다른 시각에 대한 관용을 불허(不許)하는듯 하다. 노인이 이야기하는 연륜이 만들어주는 지혜란 좀 더 근본적이고 긍정적인데 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신을 악용(惡用)하는것 보다는 선용(善用)하는것이 노인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북한이 화폐개혁을 하다가 실패를 해서 화폐개혁을 입안한 실무자를 숙청하고 다른 어떤 경제적인 개혁을 시도할려고 하지 않는 행태를 보면서 나이 든 이들(북한의 이념적인 보수주의자들)의 횡포를 보는것 같았다. 나이 든 인재들은 이념에 관한 교육만 받았으며, 최근의 우수한 인재들은 사이버 전사같은 비생산적인 인재로 키워지는 북한에서 경제에 관한 기본학습조차도 제대로 받은 인재가 없다는 사실은 나이든 보수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정부가 책임지지 못해 몰락해버린 배급경제의 빈틈을 어렵게 비집고 나온 시장경제의 싹을 잘라버리는 결과가 되었는데, 시장경제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본형성을 좌절시키고 조금이나마 형성된 자본들을 정부가 착취해버린 어이없는 일이 되어버린 사건이다. 이쯤되면 청나라 말기의 중국처럼 외국에서 경제고문이라도 초빙해야 할 정도로 국사(國事)를 위한 인재가 빈곤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한 국가의 개척적인 창설자인 김일성조차도 이념교육만을 시킨 젊은 인재들이 훗날 북한을 패망시키는 아니면 적어도 발전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리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던것 같다.사실 과거 중국이 외부에서 초빙한 고문들조차도 변하지 않는 중국의 보수적 관점에 의해서 성공적인 도움을 줄 수 없었다고 하는데, 지나치게 보수적인 관점이란 보이지 않는 재난을 가져오는듯 하다.  

가끔 보수인지 진보인지 정체성을 묻는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이 이념을 묻는 질문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전진 또는 후퇴, 생존 또는 패망같은 의미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정치적 갈등은 아직도 이념적인 갈등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듯 하다. 어쩌면 완전 보수 반동으로 돌아선 북한에 하향평준화되어가고 있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이 당한 보이지 않는 재난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도 경험하고 있는것으로 생각된다. 프랑스에서는 좌파정부속에서 우파적인 경제정책을 제안하는 젊은 경제산업자원부 장관인 임마누엘 마크롱의 정책들은 외부에서 평가하기를 우파나 좌파라는 명칭을 부여할뿐 '프랑스가 당면한 문제의 해결'이라는 유연하고 선량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지않나 하는 생각이든다.

과거부터 내려오는 권위주의적인 전통 아래서 이념적인 정치가 경제마저도 이념적으로 몰고가는 한국은 많은 변화가 필요한듯 하다. 물론 그 변화의 목표속에는 공리(共利), 국민의 행복, 갈등의 해소,목표들을 위한 인적쇄신까지 다양한 변화가 필요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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