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이나 종교에 몰입한 사람들이 자아도취, 흥분, 일탈, 자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가 믿고 있는것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는 일은 외부에서 부여된 동기와 신념이 내면화 되면서 '전율적인 노력'을 끌어내게 된다.
자신이 영광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끊임없는 되네임과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되네이는 삶속에서 자신의 삶이 가치있음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혼란기에 지도자들은 스스로 그런 '신념의 시장'을 선점하며 방황하는 백성들을 자기편에 서게한다. 남들이 그런 '얄팍한 꼼수'에 도취되어 있을때 한 수 앞을 보는 이는 '차별화된 전략'을 펴며 평정심과 냉정한 태도로 일관한다. 도꾸가와 이예야쓰나 옥타비아누스는 차별화된 전략을 제대로 구사한 사람들이다.
시끄러운 선동정치가들,선동적인 종교나 언론 가운데서 조용히 집중하는 별난 정치가나 종교 ,언론이 있기도 하는데 차별화된 전략을 성공적으로 전개시켜나가게 마련이다.
생각해보면 흥분이나 평정심이나 행복을 부여하는 정도에 대해서는 어느 것이 낫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평정심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사람의 생애주기 안에서 쾌락의 절정 다음에 올 수 밖에 없는 허무함과 절망을 맛보느니 '조용한 노력'의 시작과 끝으로 '자발적인 삶'을 살겠다는 현자들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옥타비아누스는 말했다. "천천히 서둘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