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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1일 수요일

흐르는 강물처럼

헤르만헤세의 소설 싯다르타의 마지막 장면에서 뱃사공이 만고풍상을 겪은 싯다르타에게 한 말이다. 독일작가임에도 상당히 동양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철학이 동양철학이나 서양철학이나 본질을 캐다보면 서로 근원이 비숫함을 발견한다.

어쨌거나 크게는 전체적인 삶에서 부터 작게는 배우는 운동이나 공부까지 무리가 없이 부드럽게 흘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먹어서도 철없이 뭔가 얻을려고 숨가쁘게 허덕거리는 친구들을 거리를 두는 편인데 허덕거리다 혼쭐이 나 본 과거가 있어서이다. 

권력욕구

사람은 누구나가 권력욕구가 있다.  권력이란 정치적인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욕이란 자신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욕망으로 볼때 정치인이나 기업인이나 종교인이나 학자나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 한국에서 권력욕구가 난무하는 이유는 강대국에 핍박받은 역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배하고 지배받는 생존체제에 너무 익숙하게 교육받아온........

중국의 추격

한국의 반기업정서나 법인세인하를 부자감세라고 생각하는 정서가 문제라고 한다. 결론은 이념적인 사회분위기가 문제가 된다는 말 같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는 부가가치보다는 생산성에 중점을 두는 2차산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과학기술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기본이 탄탄한' 경제구조로 가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3차산업의 부가가치를 생산하는데만 역점을 두는 사회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경제구조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많은 중간상인이 '연루'되어 있는 구조와 같다고 하겠다. 조교수의 말처럼 과학기술과 제조는 중산층을 형성하는 기반이다.

http://economy.hankooki.com/lpage/industry/201111/e20111129170321120180.htm

한국의 교육은 제조업이나 과학기술 인력을 키우는데 무척 소홀한것 같다. 기술자나 과학인력을 대우하지 않는 사회분위기를 보면 이해가 간다. 

성자의 모습

내가 백번 죽었다 깨도 흉내낼 수 없는 성자의 모습은 사회에서 열심히 가족과 이웃을 보듬고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 얼마나 발버둥쳤는데 그렇게 못살고 있다.

솔직히 '성직자'란 이름이나 '수도자'란 이름을 달고 사는 분들중에 평범한 이웃보다 존재가치가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음지에서 묵묵히 가시밭길을 가는 진짜들의 수고와 명성에 편승하는 가중된 죄를 범하고 있다. 

칭찬은 고래도 잡는다

가끔 얕은 곳으로 와서 죽은 고래가 발견된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고래의 생장속도는 대단히 빠르다. 고래의 부모들이 새끼고래에게 수영을 가르치는데,갈매기 조나산의 스승처럼 현명하게 모범을 보이기보다 들입다 칭찬만 한것이다. 어리고 순진한 고래는 우쭐해졌고, 조심성 없이 헤엄을치다가 자신의 커진 몸을 느끼지도 못하고 조난을 당한것이다.

내말을 못믿겠다고? 그럼 고래에게 직접 물어봐라. 

음울한 개구리

우물안 개구리가 우울한 이유는 네가지다. 아마 인간도 이러할것이다.

첫째 우물이 좁아서 우울하다.
둘째 밝은 햇볕을 많이 못보아서 우울하다.
세째 누군가가 장난으로 돌을 던지면 우물이 좁기 때문에 맞을 확률이 높아서 우울하다.
네째 머리는 좋아서 넘겨짚는 판단을해서 우울하다.(청개구리일화 참조) 

쓰리쿼터


김정일은 김일성권력의 사분의 삼이고, 김정은은 김정일권력의 사분의 삼이다. 권력적으로 자수성가한 김일성과는 다르다. 권력의 세계는 잔혹한 면이 있어서 스스로 키워온 내적인 힘이 없는 이상 독단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기는 힘들다. 그외 누군가의 힘이 행사되어 왔고, 행사될 예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춘희 아나운서의 눈물

김정일의 죽음을 전하는 이춘희아나운서의 진정한 슬픔......세뇌라는것은 기왕에 내것이 되면 진짜 내것이다.
우리는 그 외 많은것에 세뇌되고 산다. 비판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것이 전적으로 백성의 책임은 아니고 소수의 악한들의 능력이다.

행복을 구하면 조종당하고 남는 것이 없다. 의존이란 믿지는 장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