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양철학을 많이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드러내지 않았다. 이상하게 동양철학의 배경은 계급의 권위와 연결되어 있거나 초합리성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느낌이었다. 연구는 하되 동화되지는 말아야 할 문제 거리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보수정부가 들어설때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던 나의 맹세는 깨지고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는 일을 막을려고 했는데, 초합리적인 생각이 정치에 결합하므로 사회발전을 퇴보시키는 결과가 나오는 일을 막을려고 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다. 실제로 이 문제로 많은 골머리를 앓고 있기도 하고, 한반도뿐만이 아니고 일본, 중국, 러시아까지 지도자와 국민의 비철학적인 태도로 세계를 분열과 투쟁으로 불을 지펴놓기 일쑤였다.
젊은 시절 화가였던 히틀러는 본인의 상상력과 카리스마를 동원하여 국민의 비철학적인 속성을 빨리 간파했다. 그리고 본인을 정치지도자와 교주로 결합하였다. 그리고 이차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프랑스의 사회운동가이자 철학자인 시몬느베이유의 전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스승인 알랭의 철학하는(생각하는) 태도에 감명 받았다. 나는 법학을 공부하다가 공무원 수험생들에게 헌법을 강의하기도 했는데,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을 이야기할 때마다 일찍 꽃피운 프랑스 철학은 부러웠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이념과 초합리성 때문에 진화하지 못한 동양사회에서 별난 사람으로 살아온 것 같았다.
- 요즘은 이념과 초합리성에 환멸을 느껴 공학공부를 하면서 머리를 비우고 있는데, 좀 우스운 일이 발생했다. 12년전에 알랭의 흉내를 내면서 짤막한 글을 블러그에 자주 올렸는데, 그 중에서 롤랑부인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롤랑 부인이 프랑스혁명 당시에 정치가인 남편을 이끌면서 정치에 깊이 관여했다가 반대당이 집권하자 사형을 당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남편인 롤랑은 부인의 사형소식을 듣고 자살한다는 이야기다. 몇일 전 페이스북에서 그 글이 삭제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역시 초합리성이 지배하는 국가에서 감정이입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글은 다시 복원되었지만 좀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이형춘(Hyeong Chun Lee): 롤랑부인에 대한 검색결과 (hyeong-chun.blogspot.com)
다음은 시몬느 베이유의 친구인 시몬느 뻬뜨르망이 책을 쓰고, 강경화 씨가 번역한 책 중의 일부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면 주저 없이 곧장 그 문제의 핵심에 뛰어들곤 하던 시몬느는 곧 전쟁이 몰고 올 결과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히틀러 독재하의 독일이 아니라 히틀러가 독재를 행사하도록 만든 전반적인 현재의 문화이며, 여기에 대한 냉철한 의식이 없이는 최종적으로 민주주의 국가가 승리한다고 해도 이 위협을 극복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이러한 요지로 발표했던 글 [히틀러 독재의 원인에 대한 고찰]이라는 글에서 시몬느는 이러한 문제를 제기했다.
“인도주의는 세계통일을 원해야 할까? 우리는 로마제국의 정복과 대제국 형성을 훌륭한 업적으로 보아 왔으나 그것이 정말로 어떠한 것이었는지는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 로마가 세계를 정복한 방식과 똑같은 방식이 우리 눈앞에서 재현되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어도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통일을 위한 방식이라고 해도 옳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정의를 판단 했을 때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돌아와서 판단해야 한다. 시몬느 베이유는 철학적으로 생각하며 그 답을 찾아갔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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