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대형 서점에서 여러 분야의 서적을 뒤져 보는 습관이 생겼다. 다른 세상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타성의 굴레를 벗어나는 즐거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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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실용적인 관점으로 무척 성공적이었던 한국의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정책과 연대의식이 있었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혼란한 시기를 잘 수습한 푸틴 대통령은 박정희 정부를 정책 모델로 삼았고, 우크라이나도 그랬다.
민족적인 윤리나 인간적 윤리를 논외로 하면 젊은 박정희 대통령은 사명감을 가지고 제대로 일했다. 국가와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은 매우 미래지향적이었다. 무엇보다 인간을 잘 통찰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 유년기를 보낸 내 자신은 아침마다 동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던 새마을 노래와 여러 건전가요를 잊지 못한다. 그런 것들이 많이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말기에 대통령은 노쇄하고 있었고, 장기권력은 타성에 젖어갔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Acton의 말처럼 부패함이 익어갔다. 대통령 자신이 국가시스템과 동일했던 만큼 지도자의 쇠락은 국가의 문제가 되어갔다. 오랫동안 국가시스템이 확립되어 온 미국이나 서구유럽은 그런 문제가 덜 하겠지만 신생국가나 체제가 급격하게 변한 국가는 국가의 흥망이 지도자의 상태에 의존한다. 좀 더 현명한 지도자였다면 말년에 국가 시스템에 권력을 ‘이양’해야 했다.
서방의 정보기관들에게서 푸틴 대통령의 건강 이상설이 나오고, 비교적 성공한 독재자였던 푸틴 대통령이 박정희 정부의 후반기처럼 장기집권의 연대기를 그대로 경험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는 전쟁 후 국가재건 과정에서 통합된 의식을 가지고 젊은 지도자의 지도력이 강하게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을 가질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정치 윤리적으로 1인 집권 정치(독재)는 후진적인 시스템이지만 신생국가나 초기 개발 국가에서는 젊은 지도자가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갖는다면 장기적으로 대국을 건설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북한과 우크라이나는 자원이나 기초 기술 같은 과거 한국의 박정희 정부가 없던 것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전쟁을 멈추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젊은 지도자로서 ‘아직도’ 러시아의 재건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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