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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5일 수요일

U.S.-North Korea negotiations / imprinting effect and stigma effect

Thinking about the U.S.-North Korea negotiations, Trump’s presidency was a good time for the U.S. and North Korea. The businessman-turned president values real profits rather than principles, and sometimes throws his surroundings into confusion with capriciousness. However, he tends not to imprint or stigmatize his opponent because of his tendency to seek real profits. Therefore, there was a chance to start each other’s relationship at zero base. Around President Trump, there were ministers and deputy minister who were not biased.


Bolton, a former hardliner on the Trump team, was a figure from the Cold War era. He was imprinted with hostility toward communism and stigmatized North Korea a very hostile opponent. He deserved it because he lived during the Vietnam War and during Reagan’s presidency.

 

Under Kim Jong-il, North Korea had no intention of reform. In order to solve the North Korean problem at that time, it must have an outside orientation, which gradually became internal cohesion. The world of Kim Jong-il’s education and thinking had a narrow foundation. He was unable to cope with the transition from the Cold War to the era of globalization. Kim Jong-il imprinted the world surrounding North Korea as a battlefield, when North Korea was branded a terrorist state.


I wonder about the nature of Biden’s administration, which will soon enter the U.S.There is a possibility that the United States will form a blind cabinet that does not leave room for negotiations with North Korea. But it’s not desirable.

 

Chairman Kim Jong Un, who received Western-style education without living in the harsh Cold War era, is not expected to disturb his will to reform by imprinting or stigmatizing effects.     

2020년 11월 24일 화요일

북미협상 / 각인효과 낙인효과

북미협상에 있어서 트럼프 대통령 집권기는 미국이나 북한에 좋은 시절이었다. 원래 사업가 출신 대통령은 원칙보다 실리를 중시하며, 변덕스러움으로 주변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과거에 대한 각인이나 상대에 대해 낙인을 찍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서로의 관계를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구축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 주변엔 편견에 빠지지 않는 국무장관과 국무부장관이 있었다.

 

트럼프 팀의 강경파였던 볼턴은 냉전시대의 인물이었다.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각인되어 있고, 북한을 매우 적대적인 상대로 낙인찍었다. 베트남 전쟁과 레이건 대통령 시절을 지냈으면 그럴만 했다.

 

김정일 위원장 시대의 북한은 개혁의지가 전혀 없었다.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외부 지향성을 가져야 하는데, 점점 내부로 응집되어 갔다. 김정일 위원장의 교육이나 사고의 세계는 기반이 협소했다. 냉전시대에서 세계화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적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북한을 둘러싼 세계는 전시적인(전쟁중인 시기)세계로 각인되어 있었고,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 북한은 테러국가로 낙인 찍혔다.

 

곧 미국에 들어설 바이든 행정부의 성격에 대해서는 궁금했다. 그래서는 안되지만 협상의 여지를 두지 않을 맹목적인 내각이 구성될 가능성이 생각났다. 실제로 국무장관 내정자가 북한에 대해서 매우 강경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는 언론 기사가 나온다.

 

극렬한 냉전 시대를 살지 않고 서구식 교육을 받은 김정은 위원장은 각인 효과나 낙인 효과에 의해 개혁의지를 어지럽히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2020년 11월 11일 수요일

Relationship between Mao Zedong and Zhou Enlai

Korea has severe ideological conflicts due to regional, generational and economic difference. That’s natural because the public makes short-term, sensual judgments. It also provides conditions for politicians to use the instigation as a means to seize power.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B%93%B1%EC%86%8C%ED%8F%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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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ou Enlai had great qualities as a leader because of his abundant academic knowledge and diplomatic ability. But he faithfully assisted Mao Zedong. Zhou Enlai did not think Mao Zedong was qualified as a good leader. However, Mao Zedong took power by instigating peasants and proletariat. So the peasants and the proletariat continued to admire Mao Zedong. Zhou Enlai and Deng Xiaoping had a progressive tendency to seek change, but would not have had confidence to persuade the ignorant public in a short time. Not yet has Mao Zedong established himself as a proper leader. But they must have felt frustrated at the limits that Mao Zedong’s leadership had to change in other for China to change properly. But anyway, they had to burn their will to reform under conditions given for China.

 

Mao Zedong would have intended to play the role of emperor. Looking at Mao Zedong’s thoughts and the great trial and error of his reign, it is clear that Mao Zedong wanted to be an emperor. Zhou Enlai and Deng Xiaoping, on the other hand, would have aimed to raise China up. They knew what was important. Winbao and some have flowed heavily into the trap of power. However, the policy ideas and diplomatic ideas of Zhou Enlai and Deng Xiaoping, both pure and practical, were moved and dependable by Mao. Mao was unable to do so because of his large ideological immersion and his classical inclination.

 

From the feudal point of view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king and his subjects, the relationship between Mao and Zhou would look that way. In terms of China’s reform, Zhou had to become the next leader of China. In a world without Zhou, Deng Xiaoping must have had a hard time leading the conservative Chinese Communist Party, which failed to shed Mao’s shadow.

 

Although reform is being made due to education and so on, the elders of Korean society have easily sympathized with the charisma of their leaders. Those who wanted to be leaders tried to show charisma somehow. Perhaps China will see this more intensely. 

2020년 11월 10일 화요일

모택동과 주은래의 관계

한국은 지역과 세대, 경제력의 차이로 인하여 이념갈등이 심한 편이다. 대중들은 단기적이고 감각적인 판단을 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정치인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 선동을 잘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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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래는 학식과 외교력 등 지도자로서의 많은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모택동을 성의껏 보좌했다. 모택동이 훌륭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농민과 무산계급을 선동해서 정치권력을 잡은 만큼 농민과 무산계급의 지도자로서 추앙받았기 때문이다. 주은래와 등소평은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지만 무지한 중국의 대중들을 빠른 시간에 설득해야할 자신은 없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중국의 변화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모택동의 변화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현실에 좌절감을 느끼면서 개혁의지를 불태웠을 것이다.

 

모택동은 황제의 역할이 목표였을 것이다. 모택동의 생각과 통치시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보면 분명히 그렇다. 주은래와 등소평은 중국을 살리는 일이 목표였을 것이다. 주은래와 등소평은 모택동의 지시에 따르기보다 모택동에 대한 설득에 많은 힘을 쏟았다.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마음이 권력의 장속으로 많이 흘러들어 온 임표등과는 달리 주은래와 등소평의 정책력과 외교력등은 모택동이 감동하고 의지할 만했다. 이념 몰입도가 깊고, 중국의 고전적 인물 그 자체인 모택동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군과 신하라는 봉건적 관점을 가지면 모택동과 주은래의 관계가 그렇게 보이겠지만 개혁적인 관점으로 보면 주은래는 차기 지도자로서 인정받아야 했다. 주은래 없는 세상에 등소평 혼자서 모택동의 잔영을 벗어버리지 못한 보수적인 중국 공산당을 이끌기 힘들었을 것이다.

 

교육 등으로 인하여 많이 개혁이 되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연장자들은 지도자들의 카리스마에 쉽게 동조하고,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이들은 카리스마를 발휘해 보려고 하는 몸짓들이 많았다. 아마도 중국은 이런 현상이 더욱 강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