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국의 코로나 사태에서도 검증이 되듯이 한국에서는 종교, 특히 개신교와 2차 종교들이 사회의 어두운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국가들은 서구사회에 비해서 이념이나 종교와 같은 관념의 횡포 때문에 국가와 사회의 발전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늦었던 동북아시아 사회는 오랫동안 수직적 권력관계가 사회시스템의 큰 그림으로서 작용해 왔다. 높은 지위, 많은 나이, 더 많은 소유물 등에 대한 기대는 동북아시아 사람들의 포괄적 관념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타인과의 비교에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해소시켜야 하는 돌파구를 찾아서 방황하게 한다.
중국에서 공산주의 사상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 일본에서 전체주의 사상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 북한이 시장경제로 전환하지 못하는 이유, 한국에서 종교에 광신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경제적 불평등뿐만이 아니고 인간적인 불평등이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그것을 구실로 또 다른 불평등한 시스템에 발을 들여놓을지라도 대중은 단기간에 화난 마음을 안정 시켜줄 구실을 찾아 헤맨다.
동북아시아에서 일어나는 관념적인 불협화음의 주체는 신기하게도 대부분 젊은이가 아닌 중년 이상의 세대들이 주체라는 공통점이 있다. 동북아시아 어른들의 공통적인 꿈은 타인 위에 군림하는 왕이 되는 것이었다. 그 영토가 크던지 작던지 자신들이 과거에 억눌렸던 삶의 한을 풀어보는 것이 소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노화로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난폭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코로나 전파에 책임이 있는 교주들은 끊임없이 종교적 통합력을 이용해 정치와 교류하면서 정치적 진출을 추구했다. 사람과 인생에 숙달된 기술력을 가진 늙은이가 노욕(老慾)을 부리다가 파탄이 난 경우라고 할 것이다.
일반인들이 평화롭지도 않고 성스럽지도 않고 유쾌하지도 않은 종교를 믿는다면 사회가 그것보다도 못할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공리적인 사상이 바탕에 깔린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것이 옳다.
내 주변에는 훌륭한 노인 분들이 많다. 그러나 좀 멀리 보니 항상 시끄럽게 나서는 노인들은 이상한 노인뿐이다. 모두 정치적 야망이 있다. 그것도 대 야망이 있다. 그리고 파탄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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