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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5일 월요일

마녀사냥/ 일본의 반한시위



다른 종교의 경전에 비해서 크리스트교의 성경은 유난히 전투적이고 대립적인 장면이 많은 동(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것 같다. 이런 성격을 전투적 메시아즘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전투적메시아즘의 탄생은 로마의 압제에 저항할 수단이 없는 유태민족의 성공적인 투쟁수단으로서 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평화와 해방의 획득이라는 명분으로 생각하면 그 당시에는 훌륭한 가치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중세시대에 크리스트교의 전투적 메시아즘이 안정속에서 고착화되자 성장동력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힘을 얻어내기위한 돌파구를 찾아서 마녀사냥의 광기어린 학살이 자행되었다.

유태민족의 무산자와 유산자를 통합시키는 역할을 했던 초기메시아즘에 비해서 마녀사냥은 기존 교회의 폭정에 저항하는 대중의 잠재적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요즘 일본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듯 하다. 성장동력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는데 대한 국민들의 반발을 무마시키고 정치적,경제적 안정을 달성시키기위해 노력하는 일본극우파정치인들의 노력이 느껴진다. 더구나  많은 산업부문에서 한국과 경쟁의 장에 들어서게 되면서 타오를 수 있는 혐한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도 느껴진다.

일본은 자신보다 약자인 한국을 마녀사냥의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는 힘(?)이 아직 있지만 끊임없이 추격해오는 중국과 다른 신흥산업국들의 위협에 대해서는 반응할 수 없는 한국의 위치는 일본과 비교해서 열악한 면이 있다. 세계주의적 관점에서 원칙을 벗어난 일본극우파들의 정신세계는 많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필요한 시점에서 현실화되는 문제가 크다.

한국에서 분단으로 소모하는 에너지, 좌우이데올로기, 지역감정, 계층갈등, 빈부격차,내부경쟁등으로 소모하는 에너지는 일본에게는 득이 되고 한국에는 독이되는 것은 명확하다.
 

2013년 3월 21일 목요일

디오게네스/인간에 대한 두가지 관점


요즘 완전히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비리와 추문에 휘말려드는 법조인에 관한 뉴스가 나온다. 얼마전에는 고위 법조인이 은퇴하고 편의점을 운영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알려지기도 했다. 비숫한 권력적 환경에서 인간이 어떻게 다르게 처신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는 것 같다.

그리스 전체를 정복한 알렉산더가 원시적이고 간소한 생활을 추구하는 그리스 철학의 일파인 퀴닉파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소문을 듣고 불렀다. 그러나 디오게네스가 찾아오지 않자 알렉산더는 직접 디오게네스를 찾아갔다. 그때 디오게네스는 통속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자신이 그리스전체의 왕임을 뻐기며 디오게네스에게 소원을 들어줄테니 이야기해보라고 하였다.디오게네스는 '앞에서 얼쩡이며 그늘을 지게하지 말라'는 부탁을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알렉산더는 '내가 왕이 아니었으면 디오게네스가 됬을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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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도 인간을 깃털이 없고 두 발로 걷는 동물로 표현을 했는데 디오게네스는 털뽑힌 닭한마리를 플라톤의 제자들에게 보여주며 "이것이 인간이다."라고 일갈했다.

퀴닉파를 비롯한 고대그리스 철학자들은 인간을 자연물의 한 구성으로만 바라보는 동양철학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었는데 인간의 세속적인 권위의식을 가소로운 착각으로 냉소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간은 하느님이 모든 피조물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는 사상을 가진 크리스트교가 서양의 정신세계를 지배함에 따라서 물질적인 발전과 함께 세속적인 권력등의 인간욕망에 대해서 정당성을 심어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때로는 인간을 바라보는 서양적 관점을 '긍정적'이라고 표현하고, 동양적 관점을 '부정적'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연물을 포함한 전지구적 관점이 아닌 인간공동체적 관점으로만 봐도 세속적인 권력이나 부에 대한 과도한 욕망이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점이 있는것 같다. 

2013년 3월 15일 금요일

배블렌과 골빈나라


운동장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데 사람들이 자꾸 스케이트를 쳐다본다. 눈에 띄게 초라한 보급형 스케이트를 신고 매우 경쾌하게 운동하는 모습이 눈에 띄는 것 같았다. 보호하거나 애착을 가질 필요도 없이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가 타기에는 저렴한 막스케이트가 제격이다. 좋은 스케이트는 유리책장에 갇혀 ‘보여주기’의 임무를 완벽하게 해내고 있는 중이다.

베블렌효과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남과 차별 짓는 상품을 소유하고 싶어 하며 가격이 높을수록 개별수요와 시장수요가 높아지는 현상이다.

소비자들은 유행이나 주변의 시선에 민감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기업은 뛰어나지 않은 상품을 많은 광고를 해서 현시적 가격을 올리기에 주력하는데 배블렌은 이런 노력을 시간과 재능의 낭비라고 말한다.

대체로 사회는 모방에 움직여가는게 맞는데, 배블렌은 유한계급에 대해서 마르크스적인 계급갈등이론을 회피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인 생존과 자기보호는 땀과 노력을 통하여 사유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회피하게 하고, 우아한 성공과 그것을 입증하는 상품의 소비를 위하여 다른 방식으로 ‘땀흘려 노력한다’고 말한다.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절에 고통을 벗어나고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하는 책이 많이 발간이 되었는데, 그 중에 성공한 예로 저자 자신을 내세우며, 정작 저자 자신은 그런 이야기를 하며 돈을 벌어서 성공하고 있는 ........사회 전체적으로 봐서는 생산성도 없고 창조성도 없는 성공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을 들뜨게 만들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급기야 이념적이고 종교적인 정치지도자가 나타나서 허황된 공약으로 알맹이 없는 사회의 절정기를 만들며 서서히 사회의 발전성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을 보며 손을 쓸 수없이 깊어진 상처를 느낀다.

대중은 모방을 좋아한다. 대중은 땀흘리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는 사례를 더욱 모방하고 싶어한다. 대중의 그런 심리를 이용하여 정치적,종교적,경제적 욕망을 충족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한국사회는 구제불능의 늪으로 빠져 들어갈 것 같다. 이런 문제의 논의가 ‘잘못된 점의 개선’이라는 관점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우파나 좌파라는 이념적인 프레임에 휩쓸리기 쉬운 점도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인 것 같다.

품위를 유지할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폴리네시아의 추장들은 스스로 음식을 입 안에 집어넣기 보다는 차라리 굶어 죽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프랑스국왕의 옥좌에 불이 붙었다. 마침 옥좌를 운반하는 직책을 맡은 시종이 자리에 없었다. 왕은 그 자리에 묵묵히 앉아 있었는데, 엉덩이가 회복불가능한 상태로 구워졌다.

국가와 사회의 장래를 생각해보니 의미있는 이야기다.

배블렌은 엔지니어들의 창조적 추진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현시적인 소비가 사회를 감염시킴에 따라서 창조의욕이 상실되고 있다고 말한다. 경영인은 단기적 이익에 눈이 멀어 장기적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있으며, 국민을 대표한다는 정부는 사실상 경영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노동조합 역시 비가입 노동자의 등을 딛고 가입노동자들의 이익을 더 챙기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말한다.

공장과 직업학교등을 경험하며, 그리고 경제를 살렸으면 하는 바램으로 허황된 공약을 하는 정치지도자를 뽑았던 국민을 보며 배블렌의 주장을 크게 공감한 적이 많았다.

2013년 3월 8일 금요일

중국의 정치체제



중국 전인대에서는 서양식정치체제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에게는 서양식정치체제를 받아들일 이유도 없고, 근래에 와서 독립이나 정치혁명같은 서양식정치체제를 받아들이는 일반화된 과정도 거치지 않고 있는것 같다.

정치적으로는 공산당일당독재체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전인대의 역할은 내부민주화가 제대로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전인대의원의 상당수가 경제적부호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공산주의 국가의 의회라기보다 자본주의 국가의 의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국민들의 정치적인 반발은 천안문 사태를 제외하고는 없는 편인데 이념이나 정부의 커다란 실정같은 뚜렷한 명분을 찾을 수 없는 점에 원인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높은 경제성장율, 유인인공위성으로 대변되는 과학부문과 항공모함이나 스탤스전투기로 대변되는 국방부문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며 상징성있는 발전을 이룩한 점은 중국민들에게 불만보다 자부심을 일깨우는 요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일당독재이긴 하나 개인독재가 아니라서 느리지만 합의적인 정권교체를 이루고 있는 점도 서두르지 않는 중국인들의 국민성과 부합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    

국가의 수장을 선택하는 방법이나 정책결정에 있어서 직선제를 이상형으로 여기는 서양정치방식과는 달리 커다란 영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은 직선제적인 방식을 근본적으로 포기하고 있다. 어떤 정치체제의 문제점이 극대화 되었을때 반대의 방식이 제기되는 현실로 봐서는 지금의 회의제를 특별히 대의제 방식으로도 바꿀 이유가 없어 보인다.

외부에서 모르는 문제를 많이 안고 있을 중국의 정치지만 국가의 정책프레임을 생산적인 과학기술이나 국방기술에 치중하여 이념이나 종교같은 관념적인 사회갈등이 희석됨으로서 국가발전에 많은 이익을 보고 있는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