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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4일 금요일

두 국가 이야기 / 부동산 국가의 몰락

여러 도시에서 버스 운전을 하면서 시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였다. 나는 지리(특히 북한지리)에 관심이 많아서 학생들에게 지리를 가르치면서 생업을 유지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버스 운전대를 잡으면 인문지리학적 관점으로 도시환경을 둘러보기 바빴다.

 

버스운전은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일임에도 대접받지 못하는 일이다. 특히 근린버스(마을버스)운전은 천대받기 일쑤였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그런데로 이해하고 넘어갔지만 진심으로 섭섭했던 지역이 있었다. 서울근교의 어느 신도시에서 있었던 경험은 매우 인상적이어서 6년만에 확인차 다시 한 번 그 도시에서 버스 운전을 했다.

 

그 도시의 가로형태는 직교형이어서 바둑판처럼 곧게 뻗어있었고, 도시는 대부분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역민들은 단조롭고 곧게 뻗은 가로형태에 동화된 탓인지 성격이 급하고 버스기사를 멸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도심과 구도심이 섞여 있어서 주민들의 환경이 복잡하고 다양한 도시와는 많이 달랐다. 구도심이 많은 도시에서는 버스기사를 필요한 이웃으로 인식하는 곳도 있어서 그 도시에서는 정을 붙이고 살았다. 그 정 많은 도시는 의정부였다.

 

한 편으로는 아파트만으로 이루어진 침상도시는 처음부터 침상도시의 안락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제조업과 같은 근원적인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직종을 배척하는 법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의 생활환경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런데 버스도 편리를 위한 생활 수단이 아닌 주민들의 안락함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보는 듯 했다. 심지어는 전기버스와 가스버스의 종점을 소음이 심하고 불편하다고 내쫒거나 버스기사들의 화장실사용을 극단적으로 거부하기도 했다.

 

신도시가 만들어질 당시 30대와 40대의 입주민들은 서울에서 경제활동을 하면서 신도시의 경제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경제활동에서 은퇴할 시기가 다가온 입주민들은 많은 고민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고민하는 마음이 역력하게 보였다. 물론 주민들의 자부심의 원천이었던 부동산 가격의 하락도 예상되어 있었다.

 

그냥 한국과 일본의 모습이다. 유교문화와 계급사회의 전통이 강했던 한국과 일본은 근로활동보다 부동산 투자를 통한 경제활동을 선호하는 국민들이 많았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일을 해서 돈을 버는 행위는 본능적으로 천대했던 것이다. 프라자 합의로 수출길이 막힌 일본이 내수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금리를 낮추자 국민들은 대출을 받아서 본능적으로 부동산에 투자했다. 이런 현상을 한국과 중국이 모두 그렇다. 다만 중국은 토지를 공적 재산으로 여기기 때문에 건물에만 그런 현상이 일어났고 안좋은 결말은 한국과 일본보다 단기적으로 맛볼 수 있었던 차이가 있다.

 

누구나 알고 있을 사실임에도 일본이나 한국의 정치권에서는 단기적인 집권목표를 위해서 부동산 분야에 편중된 정책관심을 보였고, 근본 가치가 적고 폰지 사기처럼 쌓여가는 국부는 언젠가 폭탄처럼 터질 일이었다.

 

한국은 일본의 길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정당한 근로를 존중하는 이념이 국민들에게 내면화 되어야 다시 회생할 수 있다. 지나간 시절, 한국의 박정희 정부가 크게 성공했던 이유는 근로와 기술에 대한 끝없는 격려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많이 첨단화 되었고, 고도화 되었지만 기본 성질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지난번 파탄을 맞은 기괴한 정부가 기괴해진 이유는 단 한가지다. 실질을 무시하고 허상을 추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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