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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9일 금요일

중국과 일본의 비합리성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한국의 옛사람들의 정서속에는 폭력과 강제같은 수직적 의식이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였다. 계급과 권위에 눌려 합리적 의사소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합리적인 소통을 할려고 했던 사람들은 '좋은 사람'으로 오해받는 오해가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자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 )는 '자연스러운 상호이해를 지향하는 의사소통'이 합리적인 의사소통이라고 하였는데,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그런거 모르고 살았다. 조선왕조의 봉건적 사회시스템, 일본제국주의 지배,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오랫동안 겪어 온 까닭에 의식적으로 자율적인 민주주의 의식이 내면화 되어 있지 않은 까닭이다.

한국은 그래도 많이 깨어 있는 나라다. 중국과 일본이 비합리적인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쇠락의 길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회개조를 위해서 노력하는 여론이 많은 한국은 분명히 미래가 있는것 같다. 이것이 다 민주주의 의식이 바탕이 된 서구문명을 이해할려고 노력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일본은 우파적 이념과 전통적인 수직적 사회이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중국은 좌파적 이념과 전통적인 왕조적, 팽창적 이념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협력관계보다는 갈등관계가 강한 어두운 국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결국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면에 있어서 '꺾이는'분위기다. 

만약 북한사회가 장기적으로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어느쪽과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친밀해져야 한다면 결국 미국을 선택할 일이다. 수평적인 평등의식과 민주주의 의식이 내면화되어 있지 않은 국가는 외부에 대해서도 팽창주의 정책을 취할 우려가 있다. 내부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다. 간혹 현재의 한국정부가 북한과의 완전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비판을 하는 이도 있는데, 당장 급한 문제는 한반도의 혼란 상태를 비집고 들어올 동아시아의 팽창주의 세력을 막는 일이다. 한국과 북한은 역사적으로 그런 세력에 의해 희생된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오류를 되풀이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중국과 일본에 대한 생각들이다.   


As Ross Terrill points out in his book The New Chinese Empire (Terrill,2003),not only is modern China the product of empire, its expansionist objectives continue. We have already taken note of Taiwan, northeast India, and other actual and latent claims; there is also the question of Mongolia, a part of China during Qing times and now experiencing a strong resurgence of Chinese influence, hitherto in the economic arena but potentially in additional contexts as well. In offshore waters, Chana is contesting with Japan, Vietnam, the Philippines, Malaysia, and Indonesia the ownership of islands whose acquision would extend Chines juridiction over vast expanses of the South China Sea. In short, China's territorial drive is far from over.

로스테릴이 그의 책 [새로운 중국]에서 지적하듯이 현대의 중국은 왕조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그 팽창주의적 목표를 계속해서 추구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대만,인도 북동부, 기타 중국의 실제적,잠재적 영토 분쟁 지역을 살펴본 바 있다. 또한 청나라때 중국의 일부였던 몽골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몽골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강력히 부활하고 있으며, 이것이 아직은 경제 영역에 국한되어 있지만 장래에 정치적 맥락에까지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중국 앞바다에서는 일본,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등과 섬의 소유권을 놓고 다투는 중이고, 중국이 이들 섬을 획득한다면 그 영해는 광활한 남중국해의 먼 곳가지 미치게 될 것이다. 요컨데 중국의 영토 공세는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 Harm de Blij [WHY GEOGRAPHY MATTERS]중에서 - 


중국과 일본은 이념적 고립국이며 팽창주의를 지향하고 있어서 부담스러운 국가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유럽국가들은 많은 시행착오끝에 민주적 시스템을 완성시킨 국가다. 말하자면 국가주의적인 성향이 덜 해서 비상식적인 문제를 일으키기 힘든 국가일수도 있다. 국제사회에서 아직 자기 몫을 하지 못하는 강대국들을 신뢰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을 것이다.

2019년 3월 15일 금요일

인간주의 경제 / 하이예크

얼마전 버스운전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중의 한가지는 버스운전자의 자격조건이 30세 이상으로 제한되어 있었던 이유다. 즉 기성세대의 모습을 진실되게 볼 수 있는 현장이라는 이유였다. 오랫동안 청년층들과 함께 하는 일터에서 지내온 결과 뭔가 불균형한 관점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비교적 아름다웠으며 나쁜 현실은 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 젊은이들이 세상에 나갈 무렵이면 생명력있고 깔끔한 세상이 만들어지리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후 7년동안 개선은 되야 하지만 퇴출되어서는 안되는 산업현장에서 일하면서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그래서 젊은이들도 별로 없는 어두운 세계속에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적 노동하는 사람들은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근로현장은 건강하지 못한 모순이 있었다. 반대로 근로현장이 존중받고, 사회적인 지위를 인정받는 곳에서는 개인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모순이 있었다.     

오랫동안 법률을 공부하거나 사설학원에서 헌법, 행정학등을 지도하며 책을 놓지 않아서 그런지 정치권이나 법조계의 현실은 항상 친밀(?)했다. 요즘 한참 문제가 되고 있는 고위검찰간부의 성적일탈문제나 대법원장의 일탈, 여배우의 자살사건과 연루된 구세대 엘리트들의 광란적인 행태는 동조와 사회교육의 형태로 신세대 아이돌까지도 교육시켰다는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혐의사건, 배우 장자연씨 자살사건, 승리,정준영 사건은 '근본적으로' 얽혀있는 사건인것 같았다.

22년전에 주물공장의 용광로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혁신이란 없었고, 인건비와 노동력에서 모든 이익을 얻을려고 했다. 500만원을 들여 그라인더 몇개만 도입해도 품질은 뛰어나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사업주는 인건비에만 신경쓰고 있었고, 인건비를 아끼겠다고 중국에 공장을 지었다. 그리고 얼마후 회사가 폐업을 했다. 세월이 20년이 흘렀는데도 한국경제의 스타일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일하는 사람도 인간이고 기업주도 인간이며 상품을 구매하는 수요자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는 경향이 있다.

한 번은 소규모의 버스회사에서 일하면서, 운행횟수를 줄이고 버스기사의 휴식시간을 더 부여하면 어떤 이익이 있을지를 시험해봤다. 혁신적인 기업주와 혁신적인 간부, 혁신적인 기사들이 삼위일체가 되서 나온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승객은 운전이 안정적인 버스를 선호했고, 승객들에게 쓸데없는 불평거리를 주지 않은 덕에 버스기사들의 정신적 복지도 좋아졌다. 물론 사고도 없어졌다. 서비스상품의 품질이 매우 향상되었음은 물론이다.

오스트리아태생이고 영국경제학자인 하이예크(Hayek, Friedrich August von)는 계획경제나 지나친 공리주의를 경계했다. 그리고 과학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실증주의도 경계했다. 인간을 위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에 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다보니 하이예크가 케인즈의 경제사상을 비판하는 일까지 있었는데, 아마도 하이예크는 정부의 재정지출 증대로 복지정책을 추구하는 케인즈의 경제사상이 지나치게 확대되어 큰 정부가 완전히 사회주의화될것을 우려한것 같다. 그러면서도 헌법학자 켈젠의 (Kelsen,Hans) 법실증주의를 '법의 역사적 형성'이라는 관점을 포기한, 달리 표현하면 자연법적인 인간주의를 말살한, 지나치게 과학성이 담긴 사상이라고 비판했다.  


하이예크는 경제학자지만 사회철학자의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내 자신이 저번 글에서 몇 번 썼던 단어인 '가치규범성'을 중시하는 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몇 개월전 몇몇 경제학자들의 영문원서를 구입하여 읽으면서 이렇게 부지런히 경제학책을 읽으면 나중에 좋은 대학원에 다니면서 학위도 받을 수 있겠으나 내 생각은 점차 실증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명분하에 인간적인 생각이 날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한적이 있었다. 그러나 하이예크는 이런 우려를 해결해주고 있었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나 한국의 김상조교수처럼 경제학자가 가치규범성이나 사회철학적인 모습을 띄면 진보주의 경제학자로 매도당할 수 있지만 하이예크교수는 실증성을 반대하면서도 보수주의 성향을 띈다. 결국에는 진보주의 경제학자나 보수주의 경제학자나 경제학은 인간을 위한다는 가치규범성을 띄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할 수도 있겠다. 

극도의 자본주의,극도의 사회주의,광신적인 종교는 모두 인간성을 상실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생각은 모든 것의 결론일 것이다.

케인즈가 하이예크의 저서 [노예에의 길]을 읽고서 칭찬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도덕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당신에게 동의하오. 문제는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 것이오." "당신은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지 어떤 방향도 제시하지 않았소."  

아마 인간이 극단으로 가는 길을 경계한 것은 하이예크나 케인즈의 일치된 생각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2019년 3월 8일 금요일

북한과 미국의 인내심


북한의 입장이나 미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북한은 핵이 체제를 지켜주는 유일한 '수(means,a trick)'였고, 미국은 세계평화를 끌고 나가는 미국중심의 질서안정에 미국에 적대적이었던 북한이 유일한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북한은 경제적 재난을 겪고있는 약점이 있고, 미국은 트럼프대통령의 임기내에 평화적 정세를 이루어야 한다는 약점이 있는듯 하다. 이런 것들을 협상의 도구로 사용하는데, 두 국가의 관점이 다른 것이 문제인듯 하다. 자본주의 계산법과 독립주의 계산법의 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북한은 역사적이고 지정학적인 문제로 외부세력에 대해서 쉽게 계산의 결과를 보여주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독자적인 생존 기술을 터득해 온 것 같다.


북한이 핵무기를 쉽게 포기할 것이라는 예상이 비현실적임을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북한의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하도록 할려면 미국은 좀 더 인내심있게 북한을 상대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협상을 전략적인 관점으로 끌고가는 것 보다 핵을 포기하고도 북한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안정감을 북한이 느끼도록 해야할 것 같다. 국제정세와 한국과의 관계, 그리고 북한내부에서의 김정은 체제의 유지등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과제가 있을 것 같다. 핵은 북한과 외부와의 관계에도 중요한 '한 방'이지만 북한 내부의 결속력 유지에도 중요한 '한 방'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개방과 개혁의 마음이 이미 설정된 김정은 위원장은 급격한 환경변화로 정세에 모래폭풍이 밀려오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사실 '전략'에 있어서 인내심은 중요하다. 다음은 로버트 그린의 [전쟁의 기술]에 나오는 '인내심'관한 내용이다. 

반격의 원리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진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적인 모든 환경과 모든 갈등 상황에 무한히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본래 인내심이 부족한 동물이다. 우리는 기다리는 걸 참지 못하며 우리의 욕구가 최대한 빨리 충족되기를 바란다. 이는 엄청난 약점이 된다.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급하게 돌진하다 보면 선택권은 좁아지고 곤경에 빠지게 된다. 

한 편 인내심은 전쟁에서는 특히 무한한 이득을 가져다준다. 인내를 통해 우리는 기회를 감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반격을 가해 적의 허를 찌를 시간도 벌게 된다. 한발 뒤로 물러서서 적절한 시기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본성에 굴복해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언제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 Robert Greene [The 33 Strategies of WAR]-   

미국정부인사들은 한국대통령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지나치게 서두른다고 말하는데, 한국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가 전략적인 갈등관계가 아닌 협력적이고 순항적인 관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면에 있어서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가능한' 갈등관계가 아닌 협력관계로 인식할려고 노력하는듯 하다. '김정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라는 말을 강조함으로써 '결과없는' 상황을 만들지 않을려고 최선을 다하는듯 하다. 

2019년 3월 1일 금요일

보편적 교양의 필요성 / 장하준

좀 연령대가 있는 정치인이 아무런 죄책감없이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밑바닥 인생을 살아 온 경험으로는 고정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말하자면 정치적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마케팅활동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곤 한다. 정치서비스의 수요자인 고객(국민)들의 정치적 수준을 온 몸으로 체득하며, 누구보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중이다. 선거에 의해 정치인을 선택하는 한 표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한 표씩 주어지기 때문에 사회발전과 개선을 위한 의무감이 없어도 '선동'하여 표만 끌어내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요즘들어 아무나 붙들고 독서와 공부를 권하는 습관이 생겼다. 생활을 개선시키거나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는 목적이 아닌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독서와 공부'는 중요하다. 특히 인문철학, 정치, 경제학적 지식이나 사고의 능력에 있어서는 학력의 평준화가 일찌감치 이루어진게 한국의 현실이기도 한 것 같다. 학력과는 상관없이 생각이 없다는 의미다. 오랫동안 간간히 이념문제와 더불어 기성세대의 사고영역에 대해서 비판해 왔지만 이념이나 출세로 일관된 관점은 목적하는 것 외에 다른 곳으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전문성'을 이룬 것 같다. 

경제문제나 정치심리들을 말하는데, 나같은 비전문가의 분석은 어느 정도 맞을 수 있을까. 전문가와 일반시민들 중 누구와 마음을 연 토론이 가능할까. 많은 시민들이 한 표는 가지고 있으나 모든 정치경제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표는 어떤 정치인을 선출하고, 그 정치인은 어떤 정책을 내놓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한 말을 하는 정치인들중 법조인 출신들이 있는데, 법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 국민 누구나가 최소한의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교육받아야 자신의 권리 수준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Korea used to send its bureaucrats for extra training to - of all places - Pakistan and the Philippines untill the late 1960s. Pakistan was then a 'star pupil' of the World Bank, while the Philippines was the second-richest country in Asia after Japan. Years ago, as a graduate student, I had a chance to compare the early economic planning documents of Korea and India. The early Indian plans were cutting-edge stuff for their time. They were based on a sophisticated economic model developed by the world-famous statistician Prasanta Chandra Mahalanobis. The Korean ones, I am embarrassed to say, were definitely written by Professor Winter's usual complement of third-and fourth-raters'. But the Korean economy did far better than the Indian one. Perhaps we don't need 'first-best economists' to run good economic policy.

Indeed, Professor Winter's first-best economists are one thing that the East Asian economies did not have. Japanese economic officials may have been 'first-best', but they were certainly not economists - they were mostly lawyers by training. Until the 1980s, what little economics they knew were mostly of the 'wrong' kind - the economies of Karl Marx and Friedrich List, rather than of Adam Smith and Milton Friedman. In Taiwan, most key economic bureaucrats were engineers and scientists, rather than economists as is the case in China today. Korea also had a high proportion of lawyers in its economic bureaucracy  until the 1970. The brains behind President Pakr's Heavy and Chemical Industrialisation (HCI) programme in the 1970, Oh Won-Chul, was an engineer by training.

한국은 1960년대 말까지 관료들을 (많고 많은 곳 가운데 하필이면) 파키스탄과 필리핀으로 보내 추가 교육을 시켰다. 파키스탄은 당시 세계은행의 '촉망받는 학생'이었고,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부유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전 대학원생이었을때 한국과 인도의 초기 경제 계획 문서를 비교할 기회가 있었다. 인도의 초기 계획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통계학자 프라산타 챤드라 마할라노비스가 개발한 정교한 경제학 모델에 기초한 것으로, 당시로는 최첨단을 달리는 것이었다. 반면 한국의 계획은 창피한 이야기지만, 윈터스 교수가 말한 '흔히 보는 삼류, 사류 경제학자들'이 입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인도 경제보다 훨씬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 좋은 경제 정책을 운용하는 데에는'일류 경제학자'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윈터스 교수가 말한 '일류 경제학자들'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일본의 경제 관료들이 '일류'였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경제학자는 아니었다. 이들은 대부분 경제학 교육을 받지 않은 법대 출신들이었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이 그나마 알고 있는 경제학이라는게 대부분 '잘못된' 종류였다. 이들이 배웠던 경제학은 에덤 스미스와 일턴 프리드만의 경제학이 아니라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경제학이었다. 대만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제 관료들이 경제학자들이 아니라 공학도나 과학자들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역시 1970년대 이전에는 경제 관료 가운데 법대 출신의 비율이 높았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 공업화 프로그램을 진행한 브레인인 오원철은 공학자였다.

- HA-JOON CHANG의 [BAD SAMARITANS]-

저번글에서도 밝혔지만 한국이 급속한 경제개발을 한 배경에는 경제학자나 경제관료들의 역할 말고도 지도자의 일관된 장기경제정책과 경제를 일으키고자 하는 국민들의 공리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았었던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이 점은 파키스탄이나 인도, 필리핀하고는 좀 다른 점이 있는듯 하다. 인도나 파키스탄은 사회분열적 현상이 강했으며 우습게도 한국은 이념적인 통합체로서 북한과의 체제경쟁이 국민통합에 순기능을 했던 점도 있는듯 하다. 지금은 체제경쟁의 상대가 없어져서 '빨갱이'논란 자체가 비정상적인 논리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내 자신이 북한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집착을 하고 살았는지 20대 중반에 학교 졸업논문 제목이 [북한의 테크노크라트]였다. 당시 지도교수님은 좀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한 번 함께 생각해보자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교수님의 주된 연구 분야가 필리핀 정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수님이나 내 자신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에 정신에너지를 쏟고 있었던듯 하다. 북한은 강한 이념적 성질때문에 테크노크라트(technocrat)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필리핀은 법조인 출신 지도자였던 마르코스와 그를 따르는 이상한 정치인들때문에 한국이 경제성장하는 속도와 비숫하게 망가져 가고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마르코스가 매우 영리하여 20대에 자신이 연루된 사건을 스스로 변호하여 무죄를 끌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리적인 마음이 없는 정치인은 '국가와 사회공동체의 불필요악'인듯 하다.

이야기가 좀 다른 곳으로 흘렀는데, 공리적인 지도자는 공리적인 국민이 만드는듯 하다. 국민이 공리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교양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이념적인 냉전시대에 점점 선명해졌던 자본주의의 색깔은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분위기로 흘러갔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