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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3일 일요일

동아시아에서 부족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2) / 교육의 힘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한반도에서 적어도 '내 인생'은 충격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어릴때는 자유로웠다. 방학이면 흩어져 사는 가족들을 만난다는 핑계로 모르는 아저씨 옆에 붙어서 기차개찰구를 통과하면 열차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용돈이 생기면 서점으로 달려가 계몽사,계림문고,삼중당문고등의 저렴한 서적들이나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 조나단' 공상과학소설, 학생잡지,등을 사서 읽었고, 청년기에 들어서는 좀 더 진일보해서 시사잡지,시몬느베이유 평전이나 출판사에서 일했던 누나덕에 중국연변인민출판공사에서 출간한 마르크스적 입장에서 해석한 철학책등을 읽곤했다. 한때 이 철학책은 내용때문이 아니고, 연변인민출판공사에서 출판했다는 이유로 우파적 입장에 있었던 친구들의 제보로 포도청의 관심대상이 되곤했는데, 제도권내로 편입할려는 시도를 하여서 법률서적도 열심히 읽는 참신한 청년이었던것 같다.

중학교 1학년과 2학년때 중학교 도서관의 대출업무를 맡아서 하면서 북한에 관련된 서적을 자가 대출해서 읽곤했는데, 대동강에서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았다. 한 편으로는 가끔 찾아뵙는 부친은 북한에 남겨놓은 어머니나 북한의 장진으로 시집간 누이가 부친의 탈출때문에 피해를 입지나 않았을까 아니면 혹시 중국 연변으로 피신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밤마다 사회교육방송을 듣곤 했다. 나에게는 책을 통하여 접하는 세계도 충격적이었고, 부친과 결부된 한반도의 현실도 충격적이었다. 


조금 시간이 더 지나서도 이념적,종교적 카리스마가 있거나 이념적,종교적 카리스마에 도취된 시민들을 참여관찰하면서 사상적으로 완고한 교육이 시민들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체험했다. 그러나 그것이 일시적이고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행중인 거국적이고 역사적인 문제였고, 오직 장기적인 시민교육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한 편으로는 말하고 싶으나 말 할 수 없는, 아니면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은 '통제'상황을 많이 경험했는데, 사상이 경직되어있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부족한 곳에서 정신세계가 확산할 곳을 찾지 못한 백성은 남보다 더 '우월한 상태'를 찾아서 해매는, 그 상태를 못 찾으면 난폭해지거나 교활해지는, 들개같이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도 체험한듯 하다.   
       

한반도는 좀 더 다방면의 관심거리가 넘치는 땅이 될 것을 예정하고 있지만 이념이나 종교적 믿음이 완고하게 넘치는 지역일수록 단조롭고 어두운 문화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중동이 화약고인 이유는 타협하지 않는 믿음과 믿음의 충돌때문일 것이다. 서유럽사회의 민주주의 풍토는 종교적 완고함을 벗어난 르네상스(인문주의)의 시작과 과학의 발달, 계몽사상, 홉스, 로크, 루소같은 사회계약론자들의 사상등이 발달한 이유로 시작되었다. 그런 사상들이 탄생한 것이 중요하다기보다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것이 중요한 일인듯 하다.

Thus, Luther and his followers were driven by a necessary logic to support education for all people. They advocated training in the elements of reading, writing, and figuring, and held that, though fundamentally this knowledge was to make possible their understanding of the Bible and religion, it was also necessary for good citizenship. Luther wrote that even though there were no heaven nor hell, education would be necessary for the citizen.

This swing away from the dominance of education by the church, and its control more and more by sesecular forces, led to the establishment of schools and school systems by cities and by interested privated groups. An example was the school of JOHANN STURM at Strassburg, which was then in Germany. This institution aimed at piety, knowledge, and eloquence." Although religion was a prominent factor in the teaching of the school, other matters were also considered, and the control of the school was not in the hands of the church.

As this trend toward secular education grew in strength there began to appear men who attempted to put it into philosophic form, to draw up a philosophy of education to fit the new age and new demands. JOHN MILTON, the great English poet, who was also a schoolmaster, urged students to turn to the ancient writings of Greece and Rome and study them, not for their form, but because they contained all that man needed for a happy life. He believed that the best possible education was to be obtained from the study of these classical writings.

- S.E.FROST,JR.의 [BASIC TEACHINGS OF THE GREAT PHILOSOPHERS]  - 

서양사회가 완고하고 획일적인 종교적 교육으로부터 벗어나는 장면을 말하고 있지만 이념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프랑스에서 노동자생활을 했던 등소평이 공산주의 사상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프랑스사회의 현실과 철학적 성찰을 비롯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본것은 당연한듯 하다. 5개국어를 했다는 주은래도 마찬가지다. 천안문사태때 중국인민들에게 기본권을 좀 더 부여하려고 하다가 물러난 중국정치인들도 '지향하는 바'는 서유럽의 자유주의적 평등사회였을 것이다. 

일본사회는 좀 더 내성적이다. 일본의 극우주의가 만연하는 이유 역시 교육의 힘이다. 몇일전 프랑스의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극우적 성향의 후보인 르펜이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하여 자극적인 자료를 제시했다가 프랑스법원으로부터 정신감정명령을 받은적이 있었다.


합리적 설득이 아닌 감정적인 자극을 통하여 '쉽게 가는 선동의 길'을 택하기 쉬운 이념적 사고의 결론이다. 동아시아가 근대화기간이 짧고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부족한 이유는 사상적인 다양성이 부족한 탓이고 역시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이 부족한 탓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기본권들은 생각하는 교육으로부터 얻어질 것이다.  

           

2018년 9월 15일 토요일

동아시아의 정치문화 / 지리적 특성

시민의 자유나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서구화 모델이 '지향해야 할 바'라는 사실은 동아시아의 어느 국가나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문화적 바탕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긴 하다. 서구사회의 지리적 특성은 개방적이다. 전통적으로 국가와 국가의 경계나 민족과 민족의 경계는 모호하며 그 경계는 수시로 변하였다. 프랑크 왕국이 베르덩조약과 메르센조약으로 분할되고 나서도 서구사회는 이합집산을 반복했고, 그만큼 전쟁도 잦았다. 시민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서는 단기적 이데올로기가 필요하긴 했는데, 그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이데올로기들이었던것 같다. 이데올로기가 굵직하면 동아시아, 특히 한반도나 중국처럼 굵직한 분열을 일으킨다. 범 게르만주의를 내세우며 전쟁을 치루고나서도 전쟁에서 패배하면 민망해지는 그런 소소한 이념에 단기적으로 몰두하는 것이 서구사회의 전통인듯 하다.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난 이유는 서구사회에 비해서 농노해방이 늦었고, 농노해방이 늦은 이유는 지리적으로 고립된 탓이다. 북한사회가 고립국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전근대적인 강대국들, 러시아,중국,일본이라는 극복하기 힘든 장벽에 둘러싸인 까닭이다. 자유주의 국가의 맹주인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한국이 무역과 국제교류를 통한 세계화 이데올로기와 친밀해 지면서 촛불혁명까지 이루어낸 것은 지리적 폐쇄성을 극복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엽적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거나 문화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아직도 정치적으로 보수성을 띄긴 한다.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된 극복할 점은 정치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중국의 존재와 영향력이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미국과 대립할 수 있는 초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예정하고 있지만 중국은 아직도 고립국이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공산당 일당독재의 정치문화가 많은 부작용을 예정하고 있을듯 하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지향했던 등소평이 천안문 사태를 통하여 민주주의의 적이 된 이유는 과도기적인 불가피함이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등소평이 교육을 통한 시민의식의 성장을 꾀하고 있었음은 확실하다. 등소평의 장기적 전망은 중국사회가 민주화되기 위해 필요한 전망이었을 것이다.

https://hyeong-chun.blogspot.com/2016/01/blog-post_15.html

동아시아의 인권이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등이 미성숙한 이유는 지리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언어적 특성이나 민족적 특성들이 개별적이고 정체성이 구별된다. 게다가 바다나 큰 강 또는 높은 산맥등으로 구별되는 경계를 가지고 있다. 섞이고자 하나 섞일 수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었던 한반도의 정체성유지를 위한 노력은 대단했던 것 같다. 게다가 한국이 서구사회와 대등한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어내기까지 한 점은 한국의 교육개혁이나 세계화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은 피치못할 이유로 강대국들 사이의 고립국가로서 분투하고 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등소평과 같은 과도기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해 준다면 지리적 폐쇄성이나 관계적 패쇄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더 나은 장기전망을 생각할 수도 있게 한다.  

The most populous nation on the planet, heirs to great empire and guardians of one of the oldest continuous cultures, is asserting its place in a world dominated by American superpower .China is the first non-Westernpower to mount such a challenge, creating a new set of geopolitical circumstance. During the twentieth century , whe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were locked in a Cold War that repeatedly risked nuclear conflict, Armagedon never happened because this was a struggle between superpowers whose leaderships, ideaologically oppossed as they were, understood each other relatively well.

While the politicians and military strategists were plotting, the cultural doors never closed : American audiences listened to the music of Prokofiev and Shostakovich, watched Russian ballet, and read Tolstoy and Pasternak even as the Soviets cheered Van Cliburn, read Hemingway, and lionized American political dissidents.

In shorts, this was an intracultural Cold War, which reduced the threat of calamity. A cold war between China and the United States would involve far less common ground, the first intercultural cold war in which the risk of fatal misunderstanding is incalculably greater than it was during the last.   

- Harn de Blij 의 [WHY GEOGRAPHY MATTERS] -

2018년 9월 8일 토요일

동아시아에서 부족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1)

고등학교시절 학교공부는 포기하고 수업시간에 주간조선을 뒤적이고 있었다. 거기에 월남전참전에 관한 경향신문 김경래기자의 회고록이 었었다. 한국이 월남전에 참전하기로 한 결정이 엠바고(embargo / 한국의 군사정권때 언론에 공개할 시기를 조절하였다는 의미의 단어)되기전에 김경래기자가 언론에 공개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앞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경래 기자가 독대하는 자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경래 기자에게 아직 엠바고가 안 된 한국의 월남전 참전계획을 어떻게 알았냐고 따졌다.

김경래 기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손에 권총이 안 들려 있음을 내심 감사하며 기자가 취재원을 밝히는 것은 처녀가 처녀성을 빼앗기는것과 같다고 항변하며 버티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나 결국 주한 베트남 대사관 주재원에게 술을 사주고 얻어낸 정보임을 밝혔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절대 못 믿을 놈들이라고 분노하던 장면이 있었다.

몇일전 중국의 대학교수가 중국의 비민주적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에 항변하다가 생방송중에 공안에 끌려가는 장면이 생중계 되었는데, 아마도 중국정부가 인민들에게 경고하는 베시지가 담겨 있는것 같았다. "정치에 대해서는 눈,귀, 입을 닫고 경제에만 신경써라"하는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는 장면이었다. 일본은 좀 더 우회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국민들에게 애국적 이념을 심어놓고 애국을 위해서 참아달라는 동의를 구하는 방식을 취한다.

어쨌거나 동아시아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동아시아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것은 그렇게 교육받은 탓이다. 적어도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아무책이나 읽으면서 자발적 교육에 능한 사람에게는 일찌감치 파악되고 있는 사실을 동아시아 시민들은 대체로 모른다.

In Rome, education followed the pattern which had been developed by the Sophists. The ideal of the Roman was the orater who could away the multitudes with his eloquence. Success in public life was largely determinded by the power which one possessed to speak in public and to influence mass opinion. QUINTILIAN, the Roman authority on education, pointed out that the orator had to be more than an eloquent speaker.

He must also be "a good man," one of "excellent mind." He believed that "the man who can duly sustain his character as a citizen, who is qualified for the manacement of publict and private affairs, and who can govern communities by his counsels, settle them by means of laws, and improve them by means of judicial enactments, can certainly be nothing else bat an orater."

Thus, the heart of Roman education was the training of the orator. This included knowledge of logic, good morals, a careful schooling in the laws of the nation, and a character that was above suspicion. CICERO developed this scheme thoroughly and became himself the model of the Roman orator.

- S.E. FROST, JR.의 [BASIC TEACHINGS OF THE GREAT PHILLOSOPHER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