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을 생각해보면 한반도에서 적어도 '내 인생'은 충격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어릴때는 자유로웠다. 방학이면 흩어져 사는 가족들을 만난다는 핑계로 모르는 아저씨 옆에 붙어서 기차개찰구를 통과하면 열차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용돈이 생기면 서점으로 달려가 계몽사,계림문고,삼중당문고등의 저렴한 서적들이나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 조나단' 공상과학소설, 학생잡지,등을 사서 읽었고, 청년기에 들어서는 좀 더 진일보해서 시사잡지,시몬느베이유 평전이나 출판사에서 일했던 누나덕에 중국연변인민출판공사에서 출간한 마르크스적 입장에서 해석한 철학책등을 읽곤했다. 한때 이 철학책은 내용때문이 아니고, 연변인민출판공사에서 출판했다는 이유로 우파적 입장에 있었던 친구들의 제보로 포도청의 관심대상이 되곤했는데, 제도권내로 편입할려는 시도를 하여서 법률서적도 열심히 읽는 참신한 청년이었던것 같다.
중학교 1학년과 2학년때 중학교 도서관의 대출업무를 맡아서 하면서 북한에 관련된 서적을 자가 대출해서 읽곤했는데, 대동강에서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았다. 한 편으로는 가끔 찾아뵙는 부친은 북한에 남겨놓은 어머니나 북한의 장진으로 시집간 누이가 부친의 탈출때문에 피해를 입지나 않았을까 아니면 혹시 중국 연변으로 피신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밤마다 사회교육방송을 듣곤 했다. 나에게는 책을 통하여 접하는 세계도 충격적이었고, 부친과 결부된 한반도의 현실도 충격적이었다.
조금 시간이 더 지나서도 이념적,종교적 카리스마가 있거나 이념적,종교적 카리스마에 도취된 시민들을 참여관찰하면서 사상적으로 완고한 교육이 시민들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체험했다. 그러나 그것이 일시적이고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행중인 거국적이고 역사적인 문제였고, 오직 장기적인 시민교육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한 편으로는 말하고 싶으나 말 할 수 없는, 아니면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은 '통제'상황을 많이 경험했는데, 사상이 경직되어있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부족한 곳에서 정신세계가 확산할 곳을 찾지 못한 백성은 남보다 더 '우월한 상태'를 찾아서 해매는, 그 상태를 못 찾으면 난폭해지거나 교활해지는, 들개같이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도 체험한듯 하다.
한반도는 좀 더 다방면의 관심거리가 넘치는 땅이 될 것을 예정하고 있지만 이념이나 종교적 믿음이 완고하게 넘치는 지역일수록 단조롭고 어두운 문화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중동이 화약고인 이유는 타협하지 않는 믿음과 믿음의 충돌때문일 것이다. 서유럽사회의 민주주의 풍토는 종교적 완고함을 벗어난 르네상스(인문주의)의 시작과 과학의 발달, 계몽사상, 홉스, 로크, 루소같은 사회계약론자들의 사상등이 발달한 이유로 시작되었다. 그런 사상들이 탄생한 것이 중요하다기보다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것이 중요한 일인듯 하다.
Thus, Luther and his followers were driven by a necessary logic to support education for all people. They advocated training in the elements of reading, writing, and figuring, and held that, though fundamentally this knowledge was to make possible their understanding of the Bible and religion, it was also necessary for good citizenship. Luther wrote that even though there were no heaven nor hell, education would be necessary for the citizen.
This swing away from the dominance of education by the church, and its control more and more by sesecular forces, led to the establishment of schools and school systems by cities and by interested privated groups. An example was the school of JOHANN STURM at Strassburg, which was then in Germany. This institution aimed at piety, knowledge, and eloquence." Although religion was a prominent factor in the teaching of the school, other matters were also considered, and the control of the school was not in the hands of the church.
As this trend toward secular education grew in strength there began to appear men who attempted to put it into philosophic form, to draw up a philosophy of education to fit the new age and new demands. JOHN MILTON, the great English poet, who was also a schoolmaster, urged students to turn to the ancient writings of Greece and Rome and study them, not for their form, but because they contained all that man needed for a happy life. He believed that the best possible education was to be obtained from the study of these classical writings.
- S.E.FROST,JR.의 [BASIC TEACHINGS OF THE GREAT PHILOSOPHERS] -
서양사회가 완고하고 획일적인 종교적 교육으로부터 벗어나는 장면을 말하고 있지만 이념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프랑스에서 노동자생활을 했던 등소평이 공산주의 사상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프랑스사회의 현실과 철학적 성찰을 비롯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본것은 당연한듯 하다. 5개국어를 했다는 주은래도 마찬가지다. 천안문사태때 중국인민들에게 기본권을 좀 더 부여하려고 하다가 물러난 중국정치인들도 '지향하는 바'는 서유럽의 자유주의적 평등사회였을 것이다.
일본사회는 좀 더 내성적이다. 일본의 극우주의가 만연하는 이유 역시 교육의 힘이다. 몇일전 프랑스의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극우적 성향의 후보인 르펜이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하여 자극적인 자료를 제시했다가 프랑스법원으로부터 정신감정명령을 받은적이 있었다.
합리적 설득이 아닌 감정적인 자극을 통하여 '쉽게 가는 선동의 길'을 택하기 쉬운 이념적 사고의 결론이다. 동아시아가 근대화기간이 짧고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부족한 이유는 사상적인 다양성이 부족한 탓이고 역시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이 부족한 탓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기본권들은 생각하는 교육으로부터 얻어질 것이다.